2010.05.26 01:18

아주 작은 텃밭 풍경

집에 있는 작은 화단에 3년째 쌈채소와 토마토를 키우고 있다.
해가 갈수록 요령도 늘어서 이제는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로부터 잘한다고 칭찬도 듣는다. ^^


맨 앞에는 씨 뿌려서 자란 상추. 작년까지 상추 모종을 사다가 심다가 올해 처음으로 씨앗을 심었다.
씨앗이 잘 발아하지 않을까봐 좀 많이 뿌렸었는데 씨앗이 모조리 싹이 터서 솎아내느라 무지 고생했다. 아직도 반 이상 더 솎아내야 한다. 

화단 아랫단의 맨 뒤쪽은 모종을 사다 심은 치커리 5개.




모종을 심은 토마토. 앞열에 방울토마토 5개, 뒷열에 보통 토마토 3개.
작년에 들깨 모종을 2개 얻어다 심었는데 잎이 말려올라가는 병에 걸려 별로 재미를 못보고 그냥 방치했는데
들깨가 떨어져 싹이 엄청 많이 나왔다. 벌써 2년째 들깨농사 실패인데, 어떤분 말로는 농약을 쳐야 한다고 한다. 싹이 좀 자라면 뽑아서 나물이나 해먹어야겠다.



고추 모종과, 윗집 아주머니가 심어놓은 이름 모르는 쌈채소. 



작년 농사의 잔해물을 화단 뒷편에 쌓아두었다. 
올해 잘 띄워 내년에 퇴비로 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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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6 01:04

돼지 등심 햄 만들기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의 마지막 햄을 만들었다.
햄을 만들때는 다른 훈연보다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훈연을 하기 때문에 날씨가 더워지면 살균이 어려울 수가 있어서 햄은 보통 여름에는 잘 만들지 않게 된다.

주사기로 염지액을 injection 해서 염지 기간을 보통보다 짧게 6일로 잡았다.
그 후에 이틀간 냉장고에서 건조시키고 훈연하기 전에 고기의 모양을 잡아주기 위해 면실로 묶었다.
이제는 제법 요령이 생겨서 처음 묶었을 때보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할 수 있게 되었지만
햄 만드는 전체 과정중에서 가장 힘들고 지겨운 과정이다.
면실 한타래 다 쓰기 전에는 meat net을 사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자꾸 흔들린다.




벗나무 톱밥에 브리켓 5개 올려서 전날 자정쯤 훈연을 시작하고, 다음날 아침 6시에 일어나 약 2시간 가량 쿠킹을 했다.




훈연과 쿠킹 완료된 햄 네덩이의 모습. 




면실을 제거하고 진공포장해서 냉장고에 넣기 전에 속이 얼마나 익었는지 확인해 봤다.



육즙이 촉촉한게 햄이 아주 잘 만들어졌다.



진공 포장해서 냉장고에 넣었다. 
이틀쯤 있다가 훈연향이 고기 깊숙히 배면 꺼내서 슬라이스 작업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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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8 22:13

30년전 오늘이 바로 "그 날" 입니다.



작년 이맘때, 2009년 5월 17일부터 22일까지 아내와 나는 어린 딸래미를 데리고 때 이른 휴가를 다녀왔었다.
7월 말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둔 아내를 위해 조금이라도 배가 더 불러오기 전에 부랴부랴 짐을 챙겨 휴가를 떠났다.
전라남도 화순, 담양, 보성, 광주를 포함한 남도 순례였다.

휴가지로 전라남도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5월"이었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전라도 땅을 밟아본 것은 두어차례 지리산을 오르기 위해 잠시 찍고 지나가 본 것이 전부였다. 80년의 나는 너무 어렸기에 당시에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광주"라는 단어는 내 가슴속에 다듬이돌 만한 무게로 얹혀 있는 일종의 부채였다.

5월에 광주를 꼭 가봐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은 94년이었다. 
당시 읽은 기형도의 "짧은 여행의 기록"이라는 산문집에 보면 기형도가 여행중에 망월동에 갔다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민주화 운동의 아이콘이 된 선배와, 요절하여 전설이 된 선배의 조우의 배경이 된 광주 망월동의 이미지는 내 머리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작년 오늘 2009년 5월 18일 오후, 드디어 5.18 국립묘지를 찾았다. 
기념식이 열리는 오전 시간에는 차마 그곳을 갈 수가 없었다. 유가족들을 뵐 자신이 없었다.
그날은 날씨가 찌는듯이 무더웠는데, 공식 행사가 모두 끝난 오후 시간인데도 천도교에서 소박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추모 종교행사를 하고 있었다.

묘역을 돌며 한사람 한사람의 이름과, 그들이 이 땅에 머물렀던 시간들의 길이와, 묘비에 새겨진 글귀들을 찬찬히 읽었다. 국립묘지는 여러 묘역으로 분할되어 있었는데, 12묘역이었던가 그곳은 묘비명이 "누구누구의 묘"가 아닌 "아무개의 령"으로 쓰여져 있었다. 시신조차 찾을 수 없어서 이렇게 가묘를 만든 것이 묘역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짦은 휴가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날이 5월 22일 오후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


1년이 지났지만 그분의 사진, 동영상을 볼 때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진보의 미래", "운명이다"도 사놓고 아직 표지조차 열어보지 못하고 있다. 

오늘 광주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방아타령이 연주되었다.
서울에서는 조화 대신 형형색색의 화환이 배달되었다.

이/  치/욕/을/  결/코/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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