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14 22:31

텍스트큐브에서 티스토리로 이사오다...

블로그 라는 것을 시작한지 몇달,
블로그를 꾸준히 관리하고 포스팅하는 것이 보통 노력과 정성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네이버에 스크랩 전용 블로그가 있었지만 - 이것도 블로그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합법적인 장물창고가 아니었을까... - 새로운 마음으로 텍스트큐브에 블로그를 개설하고 내 글을을 써 보려고 했다.
소박하게 글 100개, 10000명 방문을 올해 2010년의 목표로 삼았었지만 
애 둘 키우며 직장생활 해가면서 블로그까지 관리한다는 것이 내게는 결코 소박하지 않은 상당히 도전적인 과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요 몇달 글쓰는 것도 좀 시큰둥해져 있었는데
텍스트큐브의 공지를 보고 상당히 전두엽에 스팀오르는 사태가 발생했다.

첫 블로그로 텍스트큐브를 선택한 유일한 이유는 Google에 대한 신뢰였다.
블로그 대문을 멋있게 꾸미기 위한 공부를 할 여력도 시간도 없고
미디어로서 내가 쓴 글들을 누구에게 보여주고큰 욕심도 없었고
그저 내 삶을, 내 생각들을, 내 기억들을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었다.
그리하여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라도 지난 일기장을 들춰보는 마음으로 언제든지 쉽게 다시 찾을 수 있는 블로그 서비스를 원했고, 거기에 Google에 대한 신뢰가 더해져 텍스트큐브를 선택했던 것이었다.

어쨌던 Google에 대한 환상과 신뢰는 요즘 산산히 부서지고 있는 중이고
오늘 그 열받는 공지로 인해 부랴부랴 Tistory 초대장을 얻어 이사짐을 싸서 이사해버렸다. 

다시 시작된 방문자 카운트 "1"을 바라보는 마음이 착찹하다.
어차피 나 자신만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그래도 타인의 시선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었나보다. 언제쯤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쟀던 새로운 시작이란 것은 언제나 설레인다.

P.S. 허걱... 글을 올리고 보니 방문자 카운트도 텍스트큐브로부터 옮겨져있다. ㅋㅋ



신고

'날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텍스트큐브에서 티스토리로 이사오다...  (0) 2010.05.14
부끄럽다...  (0) 2010.03.30
LinkedIn - Network Statistics  (0) 2010.02.24
참된 위로  (0) 2010.02.23
길 위에서 보낸 하루  (0) 2010.01.04
우리 가족 신종플루 잔혹사  (0) 2010.01.02
Trackback 0 Comment 0
2010.03.30 00:11

부끄럽다...

'마태복은 21장'을 보면,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나를 팔아 장사하는 이놈들아'하면서 꾸짖는 대목이 나온다. 힘들고 아파하는 약자를 돕는 것이 청년 예수의 가는 일이었다. 양심에 따라 불의를 비판하고 소외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온 몸을 바친 것이 청년 예수의 일생이었다. 그럼 ... 예수님도 좌파인가? 로마의 지배 하에서 신음하던 약소국 이스라엘의 청년 예수는 암울하고 혹독한 제국의 지배와 폭압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강한 자의 불의를 비판하고 꾸짖었다. 그리고 가난하고 힘든 이들에게 자비의 손길을 내밀며 '하나님의 사랑 앞에 인간은 평등하다'고 선언했다.

 

이것이 ... 예수님의 행적이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 하느님은 임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했다. ...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성경 말씀대로 하면 ... 처처곳곳에 하나님 아니 있는 곳이 없는데 ... 자신이 믿는 예수님을 모독하지 말아야 하는데…. ... 자기 교회에 예수가 나타나면 불온 세력으로 경찰에 고발할 것인가. 아니면, 좌파 세력이니 깨부술 생각인가. ... 이상 예수님의 이름에 먹칠하지 말기를 바란다.

 


어느 교회 목사님의 주일 예배 설교 말씀 같은가?
위의 말은 봉은사 주지이신 명진 스님이 2010년 3월 28일 일요 법회에서 하신 말씀 중의 일부분이다.
비록 나와 믿는 신앙은 다르지만 평소 그 인품을 존경하는 명진 스님이었는데,
위의 글을 읽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고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꼈다.

분명 기독교는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믿는데
명색이 장로라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믿는다는 하나님과 내가 믿는 하나님이 과연 동일한 하나님일까?
이명박이 믿는 하나님과 맘몬이 무엇이 다른가?

제발... 명진스님의 말처럼,
예수님의 이름에 먹칠하지 말기를 바란다.



아래는 명진 스님의 법문 전문 링크.

신고

'날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텍스트큐브에서 티스토리로 이사오다...  (0) 2010.05.14
부끄럽다...  (0) 2010.03.30
LinkedIn - Network Statistics  (0) 2010.02.24
참된 위로  (0) 2010.02.23
길 위에서 보낸 하루  (0) 2010.01.04
우리 가족 신종플루 잔혹사  (0) 2010.01.02
Trackback 0 Comment 0
2010.02.24 00:14

LinkedIn - Network Statistics

2005년에 한 프랑스인 동료를 통해 알게되어 가입은 했으나 그동안 활용하지 않았던 LinkedIn을 올해는 의욕적으로 활용해보려 하고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쌓은 인간관계들을 LinkedIn을 통해 정리해 보려고 한다.
약 1주일 동안 총 77명의 connection이 생겼다.
아직 한국 정서와는 몇가지 점에서 잘 맞지 않아 모든 인맥을 LinkedIn을 통해 정리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자신을 드러내기를 잘 원하지 않고, 또 무엇보다 해외사이트이다 보니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Network 통계를 보면 이러한 사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평생 이바닥을 파서 먹고 살 계획도 아닌데 Network이 너무 한쪽으로 편중된 느낌이다.
아이 둘 키우며 바쁘게 직장생활 하며 다양한 Network을 형성한다는게 그리 만만치 않다. 한 번 연결된다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관리하기란 더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신고

'날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텍스트큐브에서 티스토리로 이사오다...  (0) 2010.05.14
부끄럽다...  (0) 2010.03.30
LinkedIn - Network Statistics  (0) 2010.02.24
참된 위로  (0) 2010.02.23
길 위에서 보낸 하루  (0) 2010.01.04
우리 가족 신종플루 잔혹사  (0) 2010.01.02
Trackback 0 Comment 0
2010.02.23 23:43

참된 위로

지난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렸다. 눈이 많이 내릴 때마다 자연스럽게 군대 시절이 떠오른다. 요즘은 소설가 이외수가 사는 곳으로 유명해진 강원도 화천은 겨울에 참 눈이 많이 오는 곳이다. 특히 내가 복무했던 민통선 안쪽은 화천 읍내보다 갑절은 더 많이 내리는 듯 했다. 어찌나 눈이 많이 내리는지, 그 당시 나는 친구들에게 쓰는 편지의 마지막을 꼭 "저주받은 감자땅에서..."로 끝맺곤 했다. 

26개월의 군 생활 동안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대한민국의 모든 군인들은 자신이 가장 힘들게 군 생활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심지어 집에서 동사무소로 출퇴근하는 공익근무요원-공익 이전의 방위 시절엔 '동방'으로 줄여 불렀다-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동방과 최전방 철책선의 현역이 물리적으로 똑같이 힘들 수는 없다.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인 것처럼 부풀려 과장하고, 그런 고통을 당하는 자신을 스스로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는 것도 사람들이 흔히 위로를 얻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중 하나이다.
 
드디어 꿈에 기다리던 첫 휴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사복으로 갈아입고는 바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갔다. 친구들이 파란만장한 이등병의 고생담을 귀담아 들어주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휴가 나온 군바리는 단지 모임꺼리-모임주선자라고도 생각한다-일 뿐, 친구 녀석들은 자기네들끼리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국방부의 시계가 흘러감에 따라 몇 번의 휴가를 더 나오게 되었고, 친구들의 반응도 "반갑다"에서 "또 나왔어?"로 서서히 변해가며, 모이는 친구들의 숫자도 점점 줄어들었다. 자기네들끼리만 즐거워도, 찬밥 신세여도 좋았다. 나로 인해 이 친구들이 모일 수 있었다는 것, 불렀을 때 나와 줄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웠다. 우리나라 초상집에서 밤새 술 마시며 웃고 떠들고 노름하는 사람들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그렇게 유가족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위로가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것도 이 즈음이었다. 정신 없이 장례를 다 치르고 주위가 조용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상실의 슬픔이 복받쳐 오른다고들 한다. 친구들의 어떤 위로도 휴가 복귀 날짜를 늦춰주거나 제대하는 날짜를 하루라도 앞당겨 주지는 못했다. 26개월 하루 하루를 온몸으로 때우며 견뎌 내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얻고 나서 얻은 또 다른 깨달음은, 이 세상에 문제 없는 집안은 없다는 것이다. 비교적 화목했다고 '기억'되는 내 유년의 집, 그런 가정에서 무탈하게 자라났기에 내가 갖게 될 가정도 그럴 것이라 막연히 기대했었다. 그러나 선한 의도들이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표현되는 가운데 가족간에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상황을 속절없이 바라보면서 좌절하기도 했고, 아픈 자녀를 위해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다는 무력감에 가슴 아파하기도 했다. 추상적이었던 내 기억 속의 화목함도 다시 찬찬히 되돌아보니 많은 상처와 아픔을 그 안에 담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집안도 그 나름의 문제와 아픔이 있음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문제,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 건강 문제, 자녀 문제 등, 크건 작건 간에 다들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내 가족의 아픔을 해결하는 데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며 위로를 받기도 한다. 아픈 자녀를 데리고 병원에 갔을 때 더 아픈 자녀를 둔 부모를 보며 그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스스로를 위로하며 심지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성경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라고 말했다. 요즘 말로 하자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만약 나를 턴다면 아마도 비 오는 날 먼지 날리지 않을까 싶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난날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쥐구멍의 쥐새끼를 쫓아내고 대신 들어가고픈 심정이 된다. 두 번 다시 내 인생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지만, 새로운 오점들은 여전히 계속 만들어지고 있으며 얼굴을 붉게 만들 기억들은 늘어만 간다. 

성경 속의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도 때로는 하나님께 죄를 지었던 흠 있는 인간이었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하여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려 했고, 이는 아들 이삭에게 대물림 되어 이삭도 동일한 죄를 저질렀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형제간의 경쟁 속에 살았던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부모를 떠나 살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가 되어서는 자녀를 편애함으로써 형제간의 갈등의 씨앗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었다. 살인 혐의로 지명 수배 중이었던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이리 저리 변명하다가 결국 하나님을 노하시게 만들었으며, 백성들 앞에서 해리포터인 양 지팡이를 마음대로 휘두르며 마법쇼를 펼친 나머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자격을 상실하고 만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은 남의 아내를 탐냄으로써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을 어겼고, 완전 범죄를 위해 살인까지 교사했다. 후세 사람들은 예수의 족보를 읽을 때마다 메시아의 조상으로서의 영광과 더불어 다윗의 가장 추악한 범죄 행위도 함께 기억하게 되었다. 

사람 다 거기서 거기고, 아무리 깨끗해 보여도 한 꺼풀 벗겨 보면 다 똑같이 세상의 오물이 묻은 인간이라는 생각은 부끄러움에 화끈거리는 얼굴을 진정시키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 내 부끄러운 과거가 없어지는 것도, 내가 보다 깨끗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 그 사람의 좋은 점, 본받을 점들은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내 무의식은 내 속에 있는 가장 싫어하는 성품들을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쉽게 걸러서 읽어낸다. 그것이 나의 무의식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나를 고통스럽게 한 그 사람이 미워진다. 실은 그 사람이 미운 게 아니라 쓴뿌리를 어쩌지 못하는 내 자신이 싫어진 것인데, 내 지각(知覺)은 이 둘을 잘 구분해 내지 못한다. 

가끔은 내게 부족한 부분들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기도 한다. 결핍된 영양소를 본능적으로 갈구하는 육체처럼 말이다. 내게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서 서로 교제하면 내 부족함이 채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속사람을 강건하게 만드는 일은 힘들고 어렵지만, 조제약을 외부에서 투약하는 것은 참 손쉽다. 편안함에 익숙해지고 점점 의존하게 된다. 그러다가 행여 내 기대에 조금이라도 미치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마치 내가 버림 받은 것처럼 느껴진다. 무언가 속았다는 생각이 들고, 더 나아가서 상대가 나를 속였다는 생각으고까지 발전한다. 사실 상대방도 나도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저마다의 크고 작은 상처 하나쯤은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간다. 때로는 서로 곁에 그냥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 위로가 아픔의 근원까지 치유해 주지는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쓴뿌리를 완전히 치유해 줄 수 있는 공동체나 모임을 찾아 이리 저리 헤맨다. 또는 자신을 위로해 줄 사람들을 모아 스스로 그룹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 본성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 만든 그 어떤 공동체나 집단도 완전할 수 없으며, 따라서 완전한 치유를 제공해 줄 수 없다. 사람에게서 위안을 얻으려는 시도는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 간의 관계와 공동체를 마냥 불신할 이유도 없다. 우리에게는 "그 분"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삶 속에, 이웃의 삶 속에서 드러나고 다시 살아난 예수만이 내게는 참된 위로가 된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 잠언 10:12 –
신고

'날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끄럽다...  (0) 2010.03.30
LinkedIn - Network Statistics  (0) 2010.02.24
참된 위로  (0) 2010.02.23
길 위에서 보낸 하루  (0) 2010.01.04
우리 가족 신종플루 잔혹사  (0) 2010.01.02
선배의 결혼식장에서 살의를 느끼다.  (2) 2009.11.28
Trackback 0 Comment 0
2010.01.04 21:24

길 위에서 보낸 하루

2010년 첫 출근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통근버스를 타지 않고, 가족과 함께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대중교통으로 출근하기로 했다.
아침 9시에 집을 나서는데 발목까지 쌓인 눈을 보니 출근길이 순탄치 않을 거란 느낌이 팍팍 온다.
평소에는 사당역에서 7000번을 타고 영통까지 가서 영통에서 택시를 갈아타고 회사까지 가곤 했는데
오늘은 날씨가 날씨인지라 지하철을 타기로 결심을 하고 사당역으로 걸어갔다.
사당역 계단으로 내려가려던 찰나, 막 계단을 올라온 어떤 남자의 전화통화 소리가 귀에 들렸다.

"글쎄 역에서 내려 밖으로 빠져나오는데만 1시간 걸렸대..."

이 한마디에 지하철을 포기하고 7000번 버스를 기다리는 줄에 가담했다.
기다리는 7000번은 오지 않고 바로 옆줄의 7001번만 거푸 세대째가 온다. 법원사거리에서 내리기로 결정하고 줄을 잽싸게 바꿔 7001번을 올라타자 바로 뒤에 7000번이 온다. --;
사람들이 다 자리에 앉자 버스는 출발하고, 한 100미터쯤은 잘 달렸다.
본격적으로 남태령 고개를 올라가는 구간이 시작되자 정체가 시작되더니 차가 아예 멈춰 서버린다.
창 밖으로 승용차들이 1미터 올라가고 1미터 뒤로 미끄러지고를 반복하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점점 시간만 흘러가고 승객들은 수런거리며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어수선하다.
지하철 한정거장 거리인 남태령 역을 거의 40여분 걸려 도착하자 열댓명의 승객이 내린다.

남태령 정상에서 과천-봉담 고속국도인 309번 도로 시작점 까지는 내리막길이라 그럭저럭 잘 달렸다.
과천 터널이 저 멀리 보이는 곳에 이르러 차가 멈춰 서더니 꼼짝도 않고 수십분이 흐른다.
승용차들이 대열을 이탈해 차를 돌려 역주행을 시작한다.
기다리다 못한 승객들이 또 우루루 내리고 이제 차에는 열댓명 남아있다.
과천 터널 앞에서만 한시간 넘게 기다리다가 겨우 터널 앞에 도착해보니 버스 한대가 비스듬히 사선으로 미끄러져 퍼져 있어서 차선을 반 이상 막고 있었다.

터널을 거북이걸음으로 지나가고 이제 내리막길이어서 좀 달리려나 싶었는데
학의분기점 시작 부근에서 또 차가 멈춰선다.
운전기사는 앞으로 수원까지 몇시간 걸릴 지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하니 지금이라도 내려서 왔던 길을 다시 걸어서 과천터널을 걸어서 지나가 과천으로 가서 지하철을 탈 것을 권유한다. 한시간 좀 넘게 걸릴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또 다시 우루루 내리고, 이제 차에 남은 사람은 운전기사와, 나, 그리고 다른 승객 2명, 달랑 4명만 남았다.
9시30분 즈음에 버스를 탔는데 시간은 벌써 오후 1시가 훌쩍 넘었다.
책을 읽다가 졸기를 반복하며 차 안에서 기다리는 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배고픔은 정말 참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차에서 사람들이 내린지 45분 정도 지났는데 50미터도 채 달리지 못했다.
회사에 전화를 걸어 집으로 돌아간다고 통보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내려서 살펴보니 7001번 버스 3대와 7000번 버스 2대가 기차놀이를 하고 있었다...

맞은편 차선은 차가 거의 없어서 중앙분리대를 뛰어 넘어 왔던 길을 되짚어 터벅터벅 눈덮인 차도를 걸어가는데
승용차들이 몇대 지나간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매일 아침마다 북악 스카이웨이에서 히치하이킹으로 등교하던 실력을 발휘해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더니 금새 한 대가 선다. (사실 오랜 경력에서 오는 감으로 차가 주행하는 모양새만 봐도 세워줄 만한 차인지 아닌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세워 줄만한 차한테만 손을 흔든다.) 목적지가 사당역이 아니고 양재 방향이어서 양재지하차도까지만 타기로 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대화에서 느끼기로는 사업을 하시는 분이신 듯하다.

차가 과천터널을 지나 과천으로 들어서자, 아까 차에서 내려 과천으로 먼저 떠난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반대편 차선에 보인다. 이런 저런 화제로 대화를 이끌며 히치하이커의 필수 덕목인 조수석 기쁨조의 역할을 무사히 완수하고 양재 지하차도 입구에서 내렸다.

사당역까지 가는 두번째 차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대학 교수님이신 듯한데 집은 반포쪽이고 안양에서 무슨 연수가 있어서 갔더니 눈으로 인해 취소되어 돌아오는 길이라고 하신다. 매우 젊어보이는 외모이신데도 아들이 벌써 문산 1사단에서 군생활 하고 있다고 한다. 나도 눈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강원도 화천에서 복무했다고 했더니, 자신도 15사단 승리부대라며 반갑다고 악수를 청하신다.

남태령을 넘어갈 수 있을 까,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수방사 군인들이 말끔이 눈을 치워놓아서 평소와 다름없는 속도로 달려 사당역까지 올 수 있었다.

4시간 30분 걸려서 갔던 길을 다시 돌아오는데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가는 길은 답답하고 짜증나는 길이었지만 돌아오는 길은 아이리스의 배경으로 나왔던 홋카이도로 짧은 여행을 다녀온 듯한 느낌이었다.


신고

'날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LinkedIn - Network Statistics  (0) 2010.02.24
참된 위로  (0) 2010.02.23
길 위에서 보낸 하루  (0) 2010.01.04
우리 가족 신종플루 잔혹사  (0) 2010.01.02
선배의 결혼식장에서 살의를 느끼다.  (2) 2009.11.28
나도 블로그가 하고 싶다...  (0) 2009.11.27
Trackback 2 Comment 0
2010.01.02 21:18

우리 가족 신종플루 잔혹사

12월 26일 토요일 새벽 40개월 딸아이 고열 발생. 해열제 먹고 열 내림

12월 28일 월요일 아내 감기 증세 발생

12월 29일 화요일 아내 고열 발생. 신종플루 검사. 나도 감기 증세 나타남.

12월 30일 수요일 새벽 딸아이 다시 고열 발생. 09시, 아내 신종플루 양성 확진. 딸아이 신종플루 검사.

12월 31일 목요일 새벽, 5개월반 아들 고열 발생. 09시 딸아이 신종플루 양성 확진. 아들은 진료의뢰서를 첨부하여 강남 세브란스에서 11시에 신종플루 검사 실시. 해열제주사 투여후 열 내림. 잠시 귀가. 오후 5시에 아들 신종플루 양성 확진. 병원에 입원. 아내는 보호자로 함께 병원 생활 시작. 딸아이와 둘만의 생활 시작됨

2010년 1월 1일 금요일, 본인 신종플루 음성 판정. 잠복기일 수 있으므로 의사의 권유에 따라 타미플루 투약 시작함.

 

2009년의 마지막과 2010년의 시작을 신종플루와 함께 하고 있다.

차라리 양성 판정이면 좋았을 것을 나혼자 음성인 것이 왠지 배신자가 된 듯한 기분이다.

플루 양성인 40개월짜리 딸아이와 하루종일 집에서 함께 보내는 게 여간 힘든게 아니다.

세 끼 밥 챙겨 먹어야 하고, 사이사이 간식 먹여야 하고, 놀아줘야 하고, 빨래도 해야하고, 약도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한다. 먹는 약 종류는 뭐 이리 많은지... 어른이야 타미플루 캡슐을 물과 함께 삼키면 그만이지만 40개월은 한 알 보다 작은 양을 설탕 시럽을 만들어서 녹여서 먹여야 한다. 다른 가루약과 달리 타미플루는 상당히 쓰다고 한다.  

그나마 딸아이가 엄마 없이 아빠와 지내는 생활을 의연하게 잘 견뎌주고 있다. 고마울 따름이다.

 

신종플루 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심만 제외하면 그냥 여느 감기와 다를게 하나도 없는데 멀쩡한 가족이 이산가족이 되어 버렸고 생활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하지만 아이의 생명을 담보로 모험을 할 수 없기에 뭔가 속는 듯한 느낌을 애써 감추며 힘든 생활을 견뎌 나가고 있다.

 

이 힘든 시간들이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다.

신고

'날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LinkedIn - Network Statistics  (0) 2010.02.24
참된 위로  (0) 2010.02.23
길 위에서 보낸 하루  (0) 2010.01.04
우리 가족 신종플루 잔혹사  (0) 2010.01.02
선배의 결혼식장에서 살의를 느끼다.  (2) 2009.11.28
나도 블로그가 하고 싶다...  (0) 2009.11.27
Trackback 0 Comment 0
2009.11.28 23:04

선배의 결혼식장에서 살의를 느끼다.

토요일 정오에 시내의 한 대형 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선배의 결혼식이 있었다.

집에서 자녀들과 놀아 주다가 결혼식장에 10분 쯤 늦게 도착하게 되었다.

어찌나 하객들이 많은지 그 넓은 볼룸에 앉을 자리가 없었고

먼저 온 선배들 몇 명도 밖에 서서 식장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축의금을 접수하고, 1층의 다른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식권을 하나 받은 후

아는 사람들 틈에 서서 예식을 구경하던 중 선배 한명이 말했다.

 

"그거 알아? 저기 전 전 대통령 와 있는거."

 

선배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맨 앞쪽에 신랑 부모 바로 옆 테이블에 남들과는 조금 다른 모양의 의자에 앉아 있는 대머리의 뒷 모습이 보였다.

TV에서 많이 보았던 익숙한 모습. 첫 느낌은 그냥 키가 작구나 하는 정도였다.

 

식이 끝나고 테이블마다 음식들이 날라지고, 사진 촬영이 시작되었다.

자리를 차지 못했기에 친구 직장동료 사진촬영에 얼굴을 내밀어 알리바이를 남긴 후 1층의 다른 식당으로 내려가려고 기다리는 동안 내 온 신경은 이미 결혼식과는 무관하게 29만원밖에 없는 대머리 아저씨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앞으로 나가면서 일부러 문제의 그 테이블 옆으로 지나갔다. 약 3미터 거리. 순간 강풀의 만화 "26년"이 생각났다. 그 만화의 등장인물들이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얻을 수 없었던 거리가 내게는 이렇게 쉽게 허락되다니. 조금은 허무했다. 신이 만화 주인공들에게는 허락하지 않았던 그 어떤 사명을 내게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만화 '26년"의 마지막의 그 총성,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진기사는 표정들이 너무 어둡다고 밝게 웃을 것을 주문했지만 내 표정은 잘 펴지지가 않았다. 앞에 나와 높은데 서게 되니 모든게 한눈에 들어온다. 뽀얗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얼굴. 혈색도 참 좋다. 연신 사람들이 다가와 굽실대며 악수를 청하고, 대머리 아저씨는 호방한 몸짓으로 악수를 하고 즐겁게 이야기도 나누고, 음식도 잘 씹어 넘기고 있다.

 

순간, 울컥 하고 가슴속으로부터 무언가 치밀어 오른다.

살의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을 다시 생각했다.

사람을 정죄한다는 것. 어디까지가 인간의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신의 영역일까.

하나님이 그를 포용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는 그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내가 아는 "정의"라는 단어의 뜻과, "정의의 하나님" 할 때의 "정의"는 뭔가 다른 단어인 듯 하다.

 

 

 

신고

'날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LinkedIn - Network Statistics  (0) 2010.02.24
참된 위로  (0) 2010.02.23
길 위에서 보낸 하루  (0) 2010.01.04
우리 가족 신종플루 잔혹사  (0) 2010.01.02
선배의 결혼식장에서 살의를 느끼다.  (2) 2009.11.28
나도 블로그가 하고 싶다...  (0) 2009.11.27
Trackback 1 Comment 2
2009.11.27 16:25

나도 블로그가 하고 싶다...

지난주 미국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대한항공 기내에서 영화 "Julie & Julia"를 보았다.

잔잔하면서도 재미있었던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두 가지 욕구가 생겼다.

 

먼저... 요리를 정식으로 배우고 싶어졌다.

나중에 언젠가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 두게 될 때,

고용보험을 받으며 요리학원을 꼭 다녀야 겠다.

 

그리고...

 

블로그가 하고 싶어졌다.

 

신고

'날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LinkedIn - Network Statistics  (0) 2010.02.24
참된 위로  (0) 2010.02.23
길 위에서 보낸 하루  (0) 2010.01.04
우리 가족 신종플루 잔혹사  (0) 2010.01.02
선배의 결혼식장에서 살의를 느끼다.  (2) 2009.11.28
나도 블로그가 하고 싶다...  (0) 2009.11.27
Trackback 0 Comment 0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