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23 23:43

참된 위로

지난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렸다. 눈이 많이 내릴 때마다 자연스럽게 군대 시절이 떠오른다. 요즘은 소설가 이외수가 사는 곳으로 유명해진 강원도 화천은 겨울에 참 눈이 많이 오는 곳이다. 특히 내가 복무했던 민통선 안쪽은 화천 읍내보다 갑절은 더 많이 내리는 듯 했다. 어찌나 눈이 많이 내리는지, 그 당시 나는 친구들에게 쓰는 편지의 마지막을 꼭 "저주받은 감자땅에서..."로 끝맺곤 했다. 

26개월의 군 생활 동안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대한민국의 모든 군인들은 자신이 가장 힘들게 군 생활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심지어 집에서 동사무소로 출퇴근하는 공익근무요원-공익 이전의 방위 시절엔 '동방'으로 줄여 불렀다-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동방과 최전방 철책선의 현역이 물리적으로 똑같이 힘들 수는 없다.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인 것처럼 부풀려 과장하고, 그런 고통을 당하는 자신을 스스로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는 것도 사람들이 흔히 위로를 얻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중 하나이다.
 
드디어 꿈에 기다리던 첫 휴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사복으로 갈아입고는 바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갔다. 친구들이 파란만장한 이등병의 고생담을 귀담아 들어주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휴가 나온 군바리는 단지 모임꺼리-모임주선자라고도 생각한다-일 뿐, 친구 녀석들은 자기네들끼리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국방부의 시계가 흘러감에 따라 몇 번의 휴가를 더 나오게 되었고, 친구들의 반응도 "반갑다"에서 "또 나왔어?"로 서서히 변해가며, 모이는 친구들의 숫자도 점점 줄어들었다. 자기네들끼리만 즐거워도, 찬밥 신세여도 좋았다. 나로 인해 이 친구들이 모일 수 있었다는 것, 불렀을 때 나와 줄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웠다. 우리나라 초상집에서 밤새 술 마시며 웃고 떠들고 노름하는 사람들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그렇게 유가족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위로가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것도 이 즈음이었다. 정신 없이 장례를 다 치르고 주위가 조용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상실의 슬픔이 복받쳐 오른다고들 한다. 친구들의 어떤 위로도 휴가 복귀 날짜를 늦춰주거나 제대하는 날짜를 하루라도 앞당겨 주지는 못했다. 26개월 하루 하루를 온몸으로 때우며 견뎌 내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얻고 나서 얻은 또 다른 깨달음은, 이 세상에 문제 없는 집안은 없다는 것이다. 비교적 화목했다고 '기억'되는 내 유년의 집, 그런 가정에서 무탈하게 자라났기에 내가 갖게 될 가정도 그럴 것이라 막연히 기대했었다. 그러나 선한 의도들이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표현되는 가운데 가족간에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상황을 속절없이 바라보면서 좌절하기도 했고, 아픈 자녀를 위해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다는 무력감에 가슴 아파하기도 했다. 추상적이었던 내 기억 속의 화목함도 다시 찬찬히 되돌아보니 많은 상처와 아픔을 그 안에 담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집안도 그 나름의 문제와 아픔이 있음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문제,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 건강 문제, 자녀 문제 등, 크건 작건 간에 다들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내 가족의 아픔을 해결하는 데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며 위로를 받기도 한다. 아픈 자녀를 데리고 병원에 갔을 때 더 아픈 자녀를 둔 부모를 보며 그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스스로를 위로하며 심지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성경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라고 말했다. 요즘 말로 하자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만약 나를 턴다면 아마도 비 오는 날 먼지 날리지 않을까 싶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난날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쥐구멍의 쥐새끼를 쫓아내고 대신 들어가고픈 심정이 된다. 두 번 다시 내 인생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지만, 새로운 오점들은 여전히 계속 만들어지고 있으며 얼굴을 붉게 만들 기억들은 늘어만 간다. 

성경 속의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도 때로는 하나님께 죄를 지었던 흠 있는 인간이었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하여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려 했고, 이는 아들 이삭에게 대물림 되어 이삭도 동일한 죄를 저질렀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형제간의 경쟁 속에 살았던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부모를 떠나 살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가 되어서는 자녀를 편애함으로써 형제간의 갈등의 씨앗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었다. 살인 혐의로 지명 수배 중이었던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이리 저리 변명하다가 결국 하나님을 노하시게 만들었으며, 백성들 앞에서 해리포터인 양 지팡이를 마음대로 휘두르며 마법쇼를 펼친 나머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자격을 상실하고 만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은 남의 아내를 탐냄으로써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을 어겼고, 완전 범죄를 위해 살인까지 교사했다. 후세 사람들은 예수의 족보를 읽을 때마다 메시아의 조상으로서의 영광과 더불어 다윗의 가장 추악한 범죄 행위도 함께 기억하게 되었다. 

사람 다 거기서 거기고, 아무리 깨끗해 보여도 한 꺼풀 벗겨 보면 다 똑같이 세상의 오물이 묻은 인간이라는 생각은 부끄러움에 화끈거리는 얼굴을 진정시키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 내 부끄러운 과거가 없어지는 것도, 내가 보다 깨끗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 그 사람의 좋은 점, 본받을 점들은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내 무의식은 내 속에 있는 가장 싫어하는 성품들을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쉽게 걸러서 읽어낸다. 그것이 나의 무의식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나를 고통스럽게 한 그 사람이 미워진다. 실은 그 사람이 미운 게 아니라 쓴뿌리를 어쩌지 못하는 내 자신이 싫어진 것인데, 내 지각(知覺)은 이 둘을 잘 구분해 내지 못한다. 

가끔은 내게 부족한 부분들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기도 한다. 결핍된 영양소를 본능적으로 갈구하는 육체처럼 말이다. 내게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서 서로 교제하면 내 부족함이 채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속사람을 강건하게 만드는 일은 힘들고 어렵지만, 조제약을 외부에서 투약하는 것은 참 손쉽다. 편안함에 익숙해지고 점점 의존하게 된다. 그러다가 행여 내 기대에 조금이라도 미치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마치 내가 버림 받은 것처럼 느껴진다. 무언가 속았다는 생각이 들고, 더 나아가서 상대가 나를 속였다는 생각으고까지 발전한다. 사실 상대방도 나도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저마다의 크고 작은 상처 하나쯤은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간다. 때로는 서로 곁에 그냥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 위로가 아픔의 근원까지 치유해 주지는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쓴뿌리를 완전히 치유해 줄 수 있는 공동체나 모임을 찾아 이리 저리 헤맨다. 또는 자신을 위로해 줄 사람들을 모아 스스로 그룹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 본성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 만든 그 어떤 공동체나 집단도 완전할 수 없으며, 따라서 완전한 치유를 제공해 줄 수 없다. 사람에게서 위안을 얻으려는 시도는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 간의 관계와 공동체를 마냥 불신할 이유도 없다. 우리에게는 "그 분"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삶 속에, 이웃의 삶 속에서 드러나고 다시 살아난 예수만이 내게는 참된 위로가 된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 잠언 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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