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14 03:54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단상

사전처럼 두꺼운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라는 책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올라 있다고 한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으며, 올해 꼭 읽어야 할 책 목록에도 아직 들어있지 않기에 언제 읽게 될지, 과연 읽을 기회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

 

1Q84. 1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 새내기 시절인 1993년 이었다. 1993년의 문화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X세대, 포스트 모더니즘이었다. 내 모교의 교지인 연세춘추-당시만 해도 다른 학교 다니는 친구에게 교지를 우편으로 보내는 풋풋한 전통이 있었는데, 교지명이 동어반복이라는 놀림을 친구들로부터 받고는 했다-에서도 포스트 모더니즘에 관한 특집을 연재하고 있었다. 놀 시간도 부족해서 다른 신문이나 방송을 전혀 접하지 못했던 당시의 내게 연세춘추는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였다. 포스트 모더니즘과 더불어 문화계에 뜨거운 쟁점이 하나 등장했는데, 논란의 대상이 되는 작가는 이인화 라는 사람이었다. 이양반이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긴 제목의 소설을 1992년에 출간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그런데 이 소설에 표절시비가 있었다. 이 소설이 다른 작가의 작품을 배꼈는데, 베낀 작품으로 거론된 것이 공지영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었다. 표절시비에서 흔히 "베낀 적 없다", "우연이다"가 일반적으로 예상가능한 답변이었는데, 이인화는 공지영과 하루키의 작품이 사용된 게 맞다고 당당하게 선언해 버린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이것은 표절이 아니라 "혼성모방"이라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창작 기법이라고 주장한다. 혼성모방을 창작으로 볼 것이냐, 표절로 볼 것이냐로 1993년 한해의 문화계는 논쟁의 논쟁을 거듭하게 된다. 이런 종류의 논쟁이 흔히 그렇듯 뚜렷한 결말 없이 흐지부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인화는 이후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영원한 제국"이라는 정조에 관한 대박 베스트 셀러를 쓰고, 이화여대 대학 교수까지 하게 된다. 이후 박정희를 미화하는 등 수구 꼴통의 길을 걸어갔다.

 

도대체 하루키가 누구길래 하는 마음으로, 학교 앞에 있던 사회과학 서점인 "오늘의 책"으로 가서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를 들고 몇장 읽고 있는데, 서점 주인이 다가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거 읽지 마세요. 쓰레기예요."

 

그 말이 꼭 내가 의식없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는 말처럼 느껴졌고, 무안한 마음에 책을 놓고 서점을 나왔다. 그리고 후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었다. 논란이 되는 책을 읽었다는 뿌듯함 외에 책에 대해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이후에도 몇권의 하루키의 책을 읽었는데, 특별히 재밌다거나 감동적이라거나 하는 기억에 남는 작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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